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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남과 북을 잇는 역사의 옛문을 열다



파주시는 오는 31일 오후 4~6시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임진나루터에서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얻어 실시한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현장설명회에는 최종환 파주시장과 파주시 관계자, 임진리 주민, 발굴조사 관계자 등이 참석하며 일반 시민도 참석할 수 있다. 파주시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의 상징으로 고려와 조선시대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며 조선 최초의 거북선 훈련장으로 사용됐던 임진나루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왔다. 


우선 이와 관련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재)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에 임진진터와 임진나루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발굴조사는 올해 3월 29일부터 진행됐으며 오는 31일 그 동안의 조사 결과를 종합해 발표한다. 

이번 발굴조사는 2015년 시굴조사에서 파악된 진서문의 정확한 형태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발굴조사 결과 진서문의 흔적 및 이와 연결됐던 차단 성벽의 일부가 노출됐다. 진서문의 평면 규모는 너비 4.55m, 길이 7.4m 등으로 파악되며 해당 규모의 성문은 조선시대 성문 중 대형에 속한다. 이는 임진나루와 임진진의 위상이 상당했던 사정을 보여준다.


발굴과정에서는 성문에 사용됐던 다양한 종류의 석재가 출토됐다. 아치형의 홍예문을 받치던 기초석, 진서문 통로에 깔았던 대형 보도석, 잘 다듬은 대형 측벽석 등 대부분 진서문 하단부를 구성했던 석재들이 원위치에서 출토됐다. 이 밖에 성문을 달기 위해 돌에 기둥구멍을 낸 문확석 2기, 문지방석 등도 출토됐다. 이 돌들이 놓여진 형태로 보아 진서문의 성문은 두 문짝을 안쪽으로 여닫는 형태로 확인됐다. 문지 서쪽 측벽은 약 1단 정도 남아 있었지만 동쪽 측벽은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사라졌다. 서쪽 측벽과 연결되는 성벽도 배수로 공사로 사라졌지만 일부 성벽 기초가 남아 있어 문지와 성벽이 연결되는 구조를 일부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출토된 진서문의 흔적은 비록 문지의 하부 기초부만 남았지만 상부 구조를 짐작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같은 시기에 쌓여진 서울 도성, 북한산성, 기타 지방 읍성 등의 사례를 참조하면 상부 구조를 복원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번 조사로 노출된 진서문의 하부구조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국가나 지방 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현재 출토된 진서문 통로부에서 안쪽, 서측벽에서 서성벽 방향 등으로 유적이 연결되고 있어 정확한 구조와 형태를 확인하기 위한 확장조사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진서문 밖 강변으로도 보도 및 접안시설과 등이 연결될 것으로 추정됨으로 역시 단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임진진의 정확한 범위를 추정하기 위한 지표조사도 병행됐다. 그 결과 임진리 마을 주변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임진나루 안쪽 옛길 주변 공터에서 고려시대 기와가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임진나루를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관리시설이 이 일대에 있었던 사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임진나루는 한국의 전통나루 중 드물게 나루 주변의 역사 환경과 자연 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으로 파주시에서는 향후 임진나루 일대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주민들의 생활과 조화된 마을 조성을 위해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정비 및 복원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임진나루는 장단나루(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남북을 연결하고 임진강을 도강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고려 전기까지는 장단나루가 임진나루에 비해 더 활발히 활용됐다. 하지만 고려 숙종 이후부터 점점 임진나루가 더 중요한 나루로 여겨졌다. 숙종이 현재 서울에 남경을 설치했는데 당시 개경에서 남경까지 길은 임진나루를 통과하는 길이 장단나루에 비해 지름길이었던 덕분이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임진나루는 한양 북방의 군사적 요새로 주목되었다. 주변 강안이 모두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 임진나루를 지나는 좁은 외길만 남쪽으로 연결되어 천혜의 요새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조선 태종은 임진나루를 지나면서 조선 최초의 거북선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나서 피난길에 올랐던 선조 일행이 한밤 중 빗속에서 임진나루를 건넜던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임진나루에 본격적인 방어시설이 설치된 것은 영조 때이다. 1755년 임진나루에 ‘임진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그 주둔지로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차단성)을 쌓았다. 그 성벽 중간에 성문을 세웠는데 이를 ‘진서문(鎭西門)’이라 하였다. 성문 위에는 누각을 세웠는데 이를 또 ‘임벽루(臨壁樓)’라 불렀다. 당시의 모습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경 단원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가 그린 “임진서문(臨津西門) 그림 속에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진서문과 성벽은 임진나루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명승이었다. 조선시대 시인, 관료, 중국 사신 등이 이곳을 지나며 그 경치에 감탄해 남긴 시문도 다수가 전해오고 있다. 진서문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50년 무렵까지도 비교적 원 모습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53년 경 한국전쟁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임진나루는 폐허가 된 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이 되었다. 단 한 장의 사진 자료 없이, 인근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그 모습이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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