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하여 상고법원을 새로 설치하자는 법안을 국회에서 심의했으나 반대자가 많아 상임위에서도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되어 있다. 대법원이 권위실추를 이유로 대법관의 대폭증원을 원하지 않으면서 꼼수로 상고법원을 두자는 안을 내놓은 것은 법원의 권한만 늘리겠다는 것이어서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법원은 국민의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고, 제동을 걸면서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되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따라서 그 권한이 큰 만큼 희생과 봉사도 함께해야만 지지와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는 하수인 역할을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리를 박차버린 기개를 보여준 법조인들은 지금까지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경쟁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법원과 헌재는 법조계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다. 쌍끌이 어선처럼 법망이라고 하는 그물을 늘어뜨려 사회 밑바닥까지 끌고 가면서 온갖 범죄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준다. 법원은 행정 입법 사법으로 나눠진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며 행정과 입법부가 놓치고 있는 문제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법시험으로만 지탱해오던 법관수급을 시대의 변화에 수응하여 로스쿨제도를 도입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사시존치를 내세운 변호사단체의 이기적 태도는 도가 지나치다.
이런 판에 느닷없이 헌재소장 박한철이 “법원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놔 문외한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현행 헌법은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 시행될 때 위헌사항이 있느냐 여부만을 따지는 ‘구체적 규범통제’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입법과정에서부터 검토하여 위헌여부를 가리겠다는 ‘추상적 규범통제’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헌재소장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마따나 국회가 사회적 갈등구조를 해소하지 못하고 중요한 입법안이 10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 새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4분의1이나 3분의1이 찬성하면 입법과정에서 사전에 헌재의 위헌여부를 유권 해석하겠다는 것인데 입법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무현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헌법규정에 따라 헌재로 이송되었다. 다른 나라에 없는 헌재의 재심이 이뤄진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는 국회다. 선출된 300명의 대표들이 3분의2 이상 찬성하여 통과된 탄핵안을 임명된 헌법재판관 9명이 재심의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었다. 당시 국회의장으로서 탄핵안 표결에 의사봉을 쥐었던 박관용은 “헌재이송은 헌법상 절차에 불과하다. 헌재가 탄핵안을 재심의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강변했지만 헌재는 재심의를 강행하여 국회의 결의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국회의 권위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쳤고 입법부의 존재가치는 희미해졌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국회결의가 헌재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헌법상의 망발이라는 것이었지만 노무현은 두 달간의 휴무 끝에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번에 헌재소장이 주장한 것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위헌여부를 가리겠다는 태도를 넘어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대해서도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혁명적 발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 역시 헌법재판소법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헌재의 존재이유를 담고 있는 법률이다. 여기서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법원의 권위를 인정하고 3심제를 고수하려는 국민의 선택이다. 이를 넘어서서 대법원의 판결을 헌재에서 심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박한철의 고심이 눈에 띠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때 3명의 지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권한에 대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희석된다.”고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현까지 쓰며 눈을 부라린다. 특히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라고 내리 깎으며 독일처럼 의회에서 헌법재판관 전원을 선출하는 것이 났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참에 우리는 대법원에서 추진하는 상고법원과 헌재가 주장하는 재판소원과 같은 국민의 여론과 동떨어진 아이디어를 한데 합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대법원과 헌재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대법원은 어차피 대법관을 늘리지 않으면 업무폭주로 제대로 된 심리가 어려운 입장이고, 헌재는 대법원의 위상에 버금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이를 절묘하게 해결할 방법은 최고법원 2개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다. 대법관 13명에 헌법재판관 9명을 합치면 22명이다. 그들에게 모두 대법관을 제수하고 업무를 통합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법원의 권위에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헌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관행도 사라질 것이며, 헌재가 대법원을 향하여 앙탈하는 모습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자신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는 나라는 소수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전 대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