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예술품이란 작가의 혼이 깃들어있는 정신의 영역을 물리적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서 표출된 작품은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지문은 단 한 사람도 같은 지문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남긴 지문은 등록된 지문인식표에 의해서 금세 범인이 파악된다. 등록이 안 되어있는 지문은 국과수에 보관하다가 훗날 다른 범죄로 잡혀온 사람의 지문과 대조하여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진범을 붙잡는 쾌거를 이룬다. 지난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수천 년에 이르는 바둑의 역사상 한 차례도 똑같은 행마가 두어지지 않은 오묘한 묘리를 인공지능이 수십만 번의 반복학습을 통하여 인간고수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른 것은 경이롭다. 아무리 흉내바둑을 둬도 마지막에 가면 똑같은 행마가 될 수 없다는 이치와 같이 한 사람의 작가가 자기가 한번 그린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계속해서 내놓더라도 엄밀하게 살펴보면 어딘가 다른 점이 발견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간혹 유명작가의 작품이 위작논란에 휩싸이는 현실에 직면할 때가 있다. 천경자의 미인도는 전문미술인들의 한결같은 진품판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 자신은 생전에 이를 부인해왔으며 사후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가 그리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진품일 수 있느냐라는 항의지만 평생 수많은 그림을 그렸던 작가가 자기 작품을 어떻게 다 구별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그림에 대한 진위논쟁은 비록 우리나라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그 역사도 길다. 유명화가의 그림일수록 가짜가 많다. 그림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추사의 글씨는 한 때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를 이용하여 엄청나게 많은 위작이 쏟아졌다. 오랜 세월 속에 종이가 퇴색한 것처럼 만드는 기술까지 선보여 일반 수집가를 현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가짜를 모작(模作)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작(代作)이 나왔다. 진품은 작가 스스로 그리거나 쓴 작품을 뜻한다. 자작(自作)이다. 따라서 대작이란 원 작가는 따로 있고 대신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짜다. 대작에 유명작가의 이름을 버젓이 올리고 마치 자기 자신의 작품인양 시중에 선뵈어 판매했다는 것은 명성을 이용한 사기행위일 수밖에 없다. 가수 조영남은 젊어서부터 재주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인물도 잘생기고 말솜씨도 좋다. 본업인 노래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슈퍼스타다. 이미 70이 넘은 노령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활동범위는 고령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10여 년 전 친일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전 국민의 열화 같은 지탄을 받고 공식무대를 떠났던 일이 있지만 망각의 사회에서 그의 좌절은 오래가지 않고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다. 오히려 과거보다 활발해지면서 방랑논객으로 김동길 김동건과 함께 종편TV의 한 장르를 고정점령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수준 높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등장했다는 보도는 그의 인기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전시회도 열었다. 단 한 가지 재주도 못 가진 범인(凡人)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외경의 인물이 되었다. 호사다마일까. 그런 조영남에게 악재가 터져 나왔다. 조영남의 그림을 대신 그린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무명화가가 싼 값으로 그린 작품에 조영남 사인만 들어갔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일파만파 논쟁이 벌어진다. 다만 조영남 자신은 “모든 작품의 콘셉은 내 자신의 것이며 그 사람은 내 지시에 따라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화투그림은 내 작품이다 |